COLOMBIA EN LA GUERRA DE C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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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 Mariana Gallego Ortegón

 COLOMBIA EN LA GUERRA DE COREA

Traducción al idioma Coreano por:
General de Brigada Ha Youngjae

“중요한 것은 콜롬비아에 국민들이 한국이 어려운 일에 당면했을 때 지구의 반대편 남미에서 한국을 도와주었습니다. 이제 한국 국민들이 그 빚을 갚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콜롬비아 국민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대한민국 예)육군 주장 하영재.
* 마리아나 갈레고 오르테곤 씀.

1951년 6월 16일 부에나밴투라에서 25일 이상 항해한 끝에 콜롬비아 대대 장병 4,750명과 콜롬비아 호위함 3척이 부산(대한민국)에 상륙했다. 이는 유엔(UN) 세계기구의 한국전쟁 참전 요청에 대한 대응으로, 한국전쟁은 최초의 냉전 전쟁이었다. 그러나 Laureano Gómez 대통령 정부에서 우리 국민을 이 전쟁에 보내기로 한 결정은 비판이 있었습니다. Pablo Federico Przychodny 장군의 말에 따르면 일부 여론과 정부뿐만 아니라 우리 참전 용사들도 외부의 전쟁에 참전했기 때문에 그들의 헌신과 용기에 대한 인식이 낮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새로운 관점에서 보고자 하였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유사상센터 소장인 변호사 카를로스 에두아르도 라고스 캄포스(Carlos Eduardo Lagos Campos)가 이끄는 사피엔스 프로그램은 한국에 있는 예비역 육군 준장을 초청해 한국전쟁에 콜롬비아인의 참여와 그가 활동하고 있는 NGO 단체인 월드투게더(Word Together)가 콜롬비아 참전용사들과 국민들을 위해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월드투게더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및 그 가족을 위해 활동을 하려고하며 콜롬비아 국민을 위한 다양한 사업들을 계획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는 편집 위원회 구성원인 Mónica Ortegón Moncayo 변호사, Pablo Federico Przychodny 준장, 농업 경제학자인 Octavio Cruz González가 참여하여 대한민국의 한국전쟁에 대한 내용과 콜롬비아 참전용사들에 내용을 토론하여 그 내용들을 콜롬비아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졌습니다.

다음은 기조연설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한 하영재 장군과의 인터뷰의 중요한 내용에 대해 언급 하겠습니다.

한반도 분단의 배경.
한반도의 분단은 2차 대전이 끝날 무렵 급하게 결정된 일이었다. 1943년 11월 이집트 카이로에서 미국, 영국, 중국의 수뇌들이 한국을 해방, 독립 시켜주겠다고 선언 했다. 그러나,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다. 이들의 한반도 해방 계획은 전혀 구체적인 것이 없었다. 1945년 5월 독일이 항복하고, 일본만이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었다. 일본과의 전쟁을 주로 담당해 왔던 미국은 소련의 대 일본 전쟁개입을 종용했다.
미국은 만주에 있는 일본의 관동군을 대단히 막강한 세력으로 과대평가하고 있었고 소련이 이를 처리해 주길 원했다. 소련은 미국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이 핑계, 저 핑계로 일본에 대한 선전 포고를 미루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45년 8월 6일 미국이 히로시마에 핵폭탄을 투하했고 일본의 패망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바로 이때 소련은 일본과의 전쟁을 선언한다. 8월 9일 새벽 0시의 일이었다. 일본군을 파죽지세로 몰아 부친 소련군은 8월 12일 한반도의 북단인 청진에 상륙했다. 소련은 다른 의도가 있었다. 스탈린은 일본에 대한 분할점령을 트루먼에게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은 다른 의도가 있었기 때문에 소련의 요구를 거절하였다. 소련도 미국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38도선에서 남진을 멈추었다. 이로 인해 2차 세계대전 발발을 했던 나라는 소련에게 점령을 당하지 않게 되었다. 이로인해 한국은 소련과 미국에 의해 38도선으로 분리되는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 미국은 변명하고 있다. 소련의 한반도 점령을 막기 위해서 서울을 점령할 수 없게 38도선에서 한반도를 나누었다. 그러나 일본의 소련 점령을 막기 위해서 한반도를 이용했다는 것이 학자들의 주장이다.

다음은 한국전쟁의 원인입니다.
첫 번째,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전략의 차이점입니다. 소련의 전략은 북한지역의 소비에트화와 한반도에 소련에 우호적인 한국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의 전략은 미소 간의 군정을 종식시키고,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의 4개국의 신탁통치로 한반도문제를 국제화시키고, 통일한국정부를 수립하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한반도 내에서 좌파 우파의 대립입니다. 이념 및 정치대립이 심화되었습니다. 남쪽에는 우익이념의 사람들이 많았고, 북쪽에는 좌익이념의 사람들이 많았다.
결론적으로는 남북분단을 수용했다. 민족주의자들의 한반도 통일 노력이 무산되었다. 남북한 간의 독자적인 정부를 수립하였다. 1947. 11. 유엔 총회에서 미국 결의안 승인하였다. 1948. 2. 26일 총회에서 남한의 단독선거 실시 승인하였다. 1948. 8. 15에 남한에 정부수립이 되었고, 1948. 9. 9에는 북한에 정부수립이 되었다.

한반도내 전략적 힘의 불균형이 발생하였다. 북한은 소련의 적극적인 군사원조하에 전력 증강을 하여, 10개 보병사단, 1개 전차여단 200여대의 비행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한은 미군이 철수 후 힘의 공백이 발생하였다. 한편, 1948. 2월에 미국인 도서전략을 수립하여 얘치슨라인을 발표하였다. 1948. 4월에 미국군이 남한에서 철수결정을 내렸고 1949. 6월에 미군이 철수를 완료하였다. 미국의 애치슨라인은 한국의 군사요청에 대한 거부를 하였다. 미국의 애치슨라인에는 미국이 극동방어선에서 한반도를 제외되었다. 그 당시 남한의 군사력은 한국군은 8개 보병사단을 보유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전략적 가치
한반도가 다름 아닌 태평양과 유라시아 대륙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해양 열강과 대륙 열강의 패권 투쟁의 장소이다. 대륙세력인 중국과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세계지도를 거꾸로 보면 한반도가 중앙에 있다.

전략적인 이유
4대 강국의 한반도 정책이다.
미국은 러시아, 중국이 태평양으로의 진출을 막기 위한 중요하게 생각한다.
일본은 한반도가 중국과 러시아가 일본을 향해 나아가는 방패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한반도에 진출하여 부동항을 얻고자 한다. 중국은 미국과 일본의 대륙 진출을 막고 태평양으로 진출을 원한다.

한국전쟁 진행단계
한국전쟁은 4단계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단계는 북한군의 공격이다. 북한은 방어준비가 안된 한국군을 공격하였다. 두 번째는 유엔군과 한국군의 반격이다.
미군을 중심으로 16개국이 참가하였다. 1951. 6. 15일에 콜롬비아대대 한국전에 참전을 하였다.
세 번째 단계는 중국의 참전이다. 중국 참가의 이유는 두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번째는 유엔군이 38선을 넘어 한-만주 국경에 접근하는 것에 대한 방어적 조치이다. 두번째는 중국 영토에 대한 강력한 위협으로서 대응하기 위해서 미국에 대한 원치 않는 대응을 하였다.
4번째 단계는 휴전협정 체결 단계이다.
30도선을 경계로 서로 고지를 탈환하기 위한 지루한 전투가 되었다. 이 전투후에 오늘날의 한반도는 휴전선이 되고 말았다.

6. 한국전쟁에서 콜롬비아 대대의 전투
51. 7. 30에 부산을 출발한 콜롬비아 대대는 부산에서 이동하여 산양리에 도착하여 전투준비를 하였다. 산양리는 콜롬비아 군이 처음으로 전투를 시작한 장소이다.
하장군은 이 곳에서 연대장을 하였다. 이곳에서 화천 주민과 함께 2015년에 콜롬비아 한국전쟁 참전 기념비를 건립했다. 이곳에 주둔하고 있는 한국군 15사단이 매년 행사를 하고 있다.
첫번째 임무는 흑운토령에 있는 북한군에 대한 정보 보고였다.
정찰임무를 잘 수행하였으며, 흑운토령에서 첫번째 승리를 하였다. 한국에 도착해서 지형과 기후에 잘 적응하면서 승리한 전투라 의미가 있다.
51. 10. 13부터 21까지 금성지구 공격작전이 있었다. 콜롬비아 군의 최초의 공격작전이었다. 이 작전은 현재 한국의 휴전선이 되었다. 특히 콜롬비아 대대가 공격한 지역은 가장 많은 지역을 점령하였다.
콜롬비아 대대는 한국의 많은 곳에서 전투를 하였다. 전투를 한곳에서 승리를 이루었다. 그 승리의 결과가 오늘의 한국을 있게 하였다.

한국의 NGO 단체인 월드투게더에서는 콜롬비아 참전용사와 그 후손 그리고 콜롬비아 국민들을 위해서 지원사업들을 계획하고 있다.
콜롬비아 보훈병원에 대한 도움을 비롯하여, 콜롬비아 참전용사의 생활 향상을 위해 도와주고, 콜롬비아 참전용사들의 후손과 국민들을 위한 장학사업들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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